[법정 속으로]“‘응애’ 하고 울었어요”…'낙태 수술 중 발생한 살인' 사건 이야기

지난달 26일 오후 4시 서울중앙지법 424호 법정. 형사합의25-3부(재판장 박사랑) 재판의 피고인 4명은 살인·살인방조·사체손괴·의료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었다. 살인·사체손괴 혐의로 기소된 최모씨(44)는 양복을 점잖게 입고 두 손을 모은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살인방조와 의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모씨(75)는 조금 지친 듯한 표정으로 재판을 기다렸다. 살인과 사체손괴를 도왔다는 방조 혐의가 적용된 또다른 피고인 전모씨(56)와 이모씨(34)는 이날 증인 신분으로 법정에 왔다

이들은 2019년 3월20일 임신 34주인 미성년 산모 A씨의 임신중단(낙태) 수술을 한 B산부인과 관계자들이다. 이들은 제왕절개 수술로 A씨 태아를 낙태한 뒤 울음을 터트린 아이를 준비한 양동이의 물에 담가 숨을 못쉬게 해 살해하고, 사체를 의료폐기물로 소각시킨 사건에 연루된 피고인들이다. 수술을 한 전문의 윤모 원장은 이들보다 먼저 재판에 넘겨졌고 지난달 대법원에서 살인 등 혐의로 징역 3년6개월과 자격정지 3년이 확정됐다. 최씨는 B산부인과의 경영을 맡은 병원의 실질적인 주인이고, 박씨는 마취가 필요한 수술을 할 때 수당을 받고 참여하는 ‘프리랜서’ 마취과 전문의다. 전씨와 이씨는 이 병원의 간호조무사로 수술에 참여했다.

“재판부 구성원이 변경돼서 공판 갱신 절차를 진행합니다.” 지난 2월 인사이동으로 새롭게 재판장이 된 박사랑 부장판사가 재판의 시작을 알렸다. 박 부장판사는 변호인들에게 피고인의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 최씨 측은 “살인의 고의가 없고, 살인에 가담한 적 없다”면서도 사체손괴 혐의는 인정했다. 박씨 측은 “살인방조의 고의를 부인하고, 의료법 위반은 인정한다”고 했다. 박씨는 제왕절개 수술의 마취기록을 조작한 의료법 위반 혐의도 받았다. 간호조무사인 전씨와 이씨는 대체로 공소사실을 인정했다.

수술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경영자 최씨가 갓 태어난 아이를 죽인 이 사건의 공범이 될 수 있는지, 마취과 전문의로 수술 당시 마취 상황을 체크해야 했던 박씨에 대해 살인을 도왔다는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가 이 재판의 쟁점이었다. 형사합의25부는 3명의 부장판사가 25-1부, 25-2부, 25-3부로 나뉘어 재판장을 맡는 대등재판부다. 경험 많은 부장판사들은 검사와 변호인의 증인신문을 마친 뒤 직접 궁금한 점을 꼼꼼히 물었다. 질문 중에는 이 사건의 공소사실과 직접 관련이 없어보였지만, 섬찟한 내용도 있었다. “(낙태 중인 아이가) 살아서 태어난 게 이 사건 말고 전에도 있었나요?”

■낙태전문병원

2019년 봄 무렵까지 운영된 B산부인과는 지하철 환승역 인근에 있던 낡은 건물 3층에 자리했다. 건물은 낡았지만 병원 내부는 분홍색을 바탕으로 꾸며져 화사하고 밝은 분위기를 냈다. 치과·한의원·내과·피부과 등의 다른 병·의원과 같은 건물에 있어 B산부인과의 간판은 길에서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에선 B산부인과 이름은 잘 알려졌다. B산부인과가 운영하는 블로그에는 전국 곳곳의 지명을 넣어 검색어가 노출되게 했는데, “쉿! 비밀을 지켜주는 여성상담이 필요하다면?” 같은 광고문구를 걸고 상담 안내를 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낙태와 임신중절이다.

이 병원은 의사의 명의를 빌려 개설한 이른바 ‘사무장 병원’이었다. 최씨가 자금을 대고 윤 원장의 명의를 빌려 만들었다. 최씨는 행정원장 직책으로 환자 유치와 수입·지출 관리 등을 운영을 담당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윤 원장은 최씨에게 매달 1800만원의 급여를 받았다.

간호조무사로 실장 역할을 맡은 전씨는 B산부인과에선 부인과 질환을 다루는 외래진료가 많지는 않았고, 주로 낙태를 전문적으로 하던 곳이라고 했다. 하루에 10여건의 낙태 수술을 하기도 했는데, 임신 주수가 적은 산모는 전씨가 직접 상담했고, 17주 이상의 산모는 윤 원장이나 최씨 등이 상담했다.

낙태를 전문적으로 하는 병원이기 때문에 살아서 태어난 아이가 있어도 살릴 수는 없다. 분만병원과 달리 갓 태어난 아이를 돌볼 최소한의 시설도 없었다. 비좁은 수술실에선 주로 낙태 시술이 진행됐다. 살아서 출생할 경우에도 아이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 곳이다.

낙태는 실제 출산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보통 유도분만제를 통해 출산 시기에 앞서 태아를 모체 밖으로 배출시키는 형태로 진행된다. 유도분만제 등의 영향으로 낙태 과정에서 태아는 사망한 채 몸 밖으로 나온다. 유도분만 과정이 어려울 때 제왕절개 수술을 한다.

낙태 비용은 보통 임신 주수에 따라 다르지만 수십만원 선에서 형성됐고, 대부분 현금으로 결제된다. 낙태 시술이 이뤄지거나 질세정제 등 상품을 판매하면 실적에 따라 간호조무사 등에게 인센티브를 줬다. 지난 19일 열린 재판에선 윤 원장과 함께 이 병원에서 일한 전문의 송모씨가 증인으로 나섰다. 송씨는 자연분만·제왕절개 등 낙태수술에 참여하면 인센티브를 준다는 B산부인과의 공문이 간호사실에 오랫동안 붙어있었다고 했다.

■산모 어머니는 병원을 떠나지 못했다

미성년자였던 A씨와 그의 어머니는 2019년 3월18일 다른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은 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B산부인과에 왔다. 유도분만 방식으로 낙태시술을 하려고 했지만 자궁경부에 출혈소견이 있어 낙태를 하지 못했다. 다음 날 다른 병원을 찾아봤지만 낙태를 하지 못했다. 결국 다시 B산부인과에 오게 됐다.

B산부인과에서 일했던 간호조무사 최모씨가 증인신문에서 설명한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A씨와 그의 어머니는 당시 다급하고 간절한 상황이었다. “산모의 어머니가 내원 당시 상담하면서 울며 소리를 질렀어요. 왜 소리를 질렀는지 이유는 모르겠는데 ‘강간당했다’고 했어요. 소리지른 건 분명해요. (병원 측에서) 낙태가 안 된다고 해서 그런 것으로 알고 있어요. 장시간 계시다 갔는데 ‘병원에서 나가달라’고 할 정도였고, (직원들이) 밥을 먹고 왔는데도 안 가고 계셨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징역 3년6개월이 확정된 윤 원장에 대한 판결문을 보면 “산모가 미성년자인데다가 그 모친이 산모가 강간을 당해 임신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낙태를 요구”했다고 나온다.)

간절한 심정으로 낙태 병원을 찾았지만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임신 34주는 출산이 임박한 시점이다. 34주를 넘어선 태아는 감정 표현도 하고, 빛과 어둠을 구별한다. 뒤늦게 병원을 찾은 건 임신 초기의 낙태 시술도 불법인 상황에서 병원 문을 두드리기 힘들었거나 산모가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임신 사실을 초기에 미처 몰랐거나 이를 숨겨왔던 것으로 추측된다. 강간 또는 준강간 피해로 인한 임신중절은 허용되고 있지만, 관련 사건의 진행에 따라 적절한 시기를 선택해 낙태를 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한다. A씨와 그의 어머니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A씨는 결국 B산부인과로 다시 가서 낙태를 할 수 있게 됐다. 돈 때문이었다. 검찰의 공소 내용을 보면, 최씨는 A씨 어머니에게 “낙태를 진행한 후 장례를 치르니, 그 비용으로 2800만원이 필요하다”고 한 뒤 돈을 받았다. 그리고 낙태가 어렵다는 윤 원장에게 제왕절개로 낙태하자고 해 수술을 하게 했다.

최씨 측이 이 재판에서 주로 다투는 지점도 이 부분이다. 경영을 담당하는 그는 진료와 관련된 내용은 관여하지 않았고, 윤 원장에게 지시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제왕절개 방식의 낙태를 자신이 제안한 것이 아니며, 아이가 살아서 태어날 것을 알고 죽이는 방식으로 낙태하자는 일에 공모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검찰과 변호인은 살인 혐의를 놓고 서로 다퉜지만 돈이 건네졌고, 제왕절개 수술이 이뤄졌으며,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양동이

제왕절개로 꺼내진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고 미세하게 움직였다. 옆으로 몸을 수그린 갓 태어난 아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 아이의 탯줄을 자르고 4ℓ 들이 파란 양동이에 넣는데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양동이엔 절반 정도 물이 담겨 있었다. 산모 A씨의 수술 부위를 다시 꿰매고, 피를 닦고 지혈하는 등 수술이 끝날 무렵까지 약 45분이 더 걸렸다. 윤 원장은 검찰 조사에서 “물이 담긴 양동이에 아기를 집어넣으면 아기는 당연히 죽는다”고 했다.대법원 판례는 낙태를 “태아를 자연분만기에 앞서서 인위적으로 모체 밖으로 배출하거나 모체 안에서 살해함으로써 성립하고, 그 결과 태아가 사망하였는지 여부는 낙태죄의 성립에 영향이 없는 것”이라고 본다. 임신중단 과정에서 산 채로 태어난 아이를 죽이는 것은 낙태죄가 아닌 살인죄로 볼 수 있다는 논리다. 다른 판례도 분만 중 태어난 아이, 규칙적인 진통을 동반하며 분만이 개시된 태아 역시 사람으로 봐 살인죄를 적용한다. 낙태의 객체가 아니라 살인의 피해자로 법률상 권리와 의무의 주체인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박사랑 부장판사가 “살아서 태어난 아이가 또 있었냐”고 묻자 간호조무사 전씨와 이씨 모두 그렇다고 했다.

“증인은 5년 정도 이 병원에 근무한 것 같은데, 살아서 태어난 아이는 없었나요?” “살아서 태어난 아이도 있었어요. (이 사건과) 똑같이 처리….”(전씨) “살아 태어난 걸 어떻게 알지요? 이 사건 말고 전에도 있었나요?” “네. ‘응애’하고 우는 소리가 났어요.”(이씨)

이런 경우는 낙태 수술 중 예상치 못하게 아이가 살아서 태어났다기보다, 살아서 태어날 것을 예상하고 낙태를 했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윤 원장 지시가 있거나, 제왕절개 수술을 할 때, 임신 주수가 큰 산모의 낙태를 할 때는 양동이를 준비했다고 한다. 살아서 태어난 아이를 ‘처리’하기 위한 것이다.

“큰 주수, 제왕절개 수술을 할 때는 양동이를 준비한다”는 게 이전부터 일했던 간호조무사들로부터 인수인계되던 내용이라는 증언도 있었다. 수술 과정에서 아이가 살아 태어나도 치료와 보호는 처음부터 매뉴얼에 없었다.

이 사건을 수사한 한 관계자는 B산부인과에서 낙태 중 살아난 아이를 죽인 사건이 또 있었는지에 대해선 “증거를 확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 사건은 첩보를 통해 수사가 이뤄졌다. 낙태전문병원의 수술실 안에서 일종의 공범관계에 있는 이들 사이에 일어난 일이 외부로 드러나기란 쉽지 않다.

2019년 4월, 이 사건이 일어난 뒤 한 달이 못 돼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낙태 수술을 한 의사나 산모를 처벌하지 않고 있다. 윤 원장에 대해서도 업무상 촉탁 낙태 혐의는 무죄가 확정됐다. 하지만 생존 가능성이 높은 태아를 죽이는 방식으로 하는 낙태는 수술 과정을 지켜보지 않는 이상 사전에 예방하거나 적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예전에도 이 사건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01년 서울의 한 산부인과 원장 박모씨가 당시 임신 28주차인 산모의 태아를 유도 분만 방식으로 낙태하던 중 태아가 울음 터트리고 태어나자 미리 준비해둔 염화칼륨을 넣은 주사기를 심장에 꽂아 살해한 일이 있었다. 염화칼륨은 희석해서 사용하면 미숙아에게 꼭 필요한 영양분이 되지만, 희석되지 않으면 심장마비를 일으킨다. 미국에서는 사형집행에 쓰이기도 한다. 박씨 측은 당시 “26~28주였던 태아가 낙태시술 중 미처 사망하지 않고 태어나, 낙태를 완성한다는 생각으로 주사를 놓은 것”이라 해명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7년 박씨는 징역 3년 및 자격정지 2년, 집행유예 4년이 확정됐다.

B산부인과 관계자들에 대한 재판은 피고인 신문 등 절차가 마무리되면 곧 1심 판결이 나온다. 지난 19일 재판에선 간호조무사 전씨와 이씨가 반성문과 탄원서를 제출했다. 지금 일하고 있는 다른 병원의 관계자들이 선처를 부탁하는 내용도 있었다.

윤 원장에 대한 항소심 재판 당시 A씨 모친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윤 원장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울먹였다.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 수사 관계자는 “살인 피해자는 갓 태어난 아이였고, 그 피해자가 이미 사망해 처벌불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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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103220603001#csidx553e01b7891938e8b96c645400607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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