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토리’ 뉴스레터는 한 주 동안 여성이 주인공인 기사를 발굴해, 젠더 관점으로 풀어봅니다. 더 나아가 이 뉴스레터를 통해 많은 여성들과 연결되길 소망합니다.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던 지점들을 바로 잡기 위한 여정, 저희와 함께 해요.

Her Words : 여성의 언어

"For most of history, anonymous was a woman.

역사에 걸쳐 여성은 익명의 존재였다."

-버지니아 울프

'나로서' 존재하기

안녕하세요, '허스토리'입니다. 어제, 3월 31일은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이었는데요. 얼마 전 스스로 생을 마감한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며, 또 보궐선거를 앞두고 난무하는 온갖 차별과 혐오 발언에 맞서는 의미에서 허스토리 첫 뉴스레터는 한국일보의 기획 연재 '트랜스젠더 의료는 없다'로 열고자 합니다. '여성'의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구독했더니, 무슨 이야기냐고요? 일단 조금만 더 읽어주세요! 😌


누군가에게는 몸과 마음에 난 생채기를 치유하고, 외부에서 침입한 감염원을 무찌르는 곳 '병원'. 하지만 대부분 트랜스젠더에게 병원은, 상비약으로 연명하다가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최후의 순간에 가는 곳이 돼버렸습니다. 트랜스젠더에게 의료가 하나의 커다란 장벽이 된 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①엄연한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트랜스젠더에 대한 불쾌한 감정과 혐오를 숨기지 않는 의료진 ②트랜스친화 의료에 준비되지 않은 의학계의 원인이 겹쳐 병원은 '공포의 대상'이나 다름 없습니다.


자신의 생물학적 성별에 불쾌감과 위화감을 겪는 이들이 고민을 거듭하다 받는 '성확정 수술'은 자신이 생각하는 몸과 마음을 일치시키고, 본래 정체성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공공병원에서는 관련 진료를 받을 수 없고, 의과대학에서 이를 필수로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올해 서울대 의대에 처음으로 선택과목이 생긴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방광이 부풀어 오르고, 몸 속에 남은 질과 자궁 진료를 봐야할 때도 수도권에 밀집한 일부 작은 병원을 수소문해 진료를 받는 실정입니다. 진료를 해주는 병원이 극히 적어 문제가 생겨도 속으로 삼키고 맙니다.


여러분, 사실 2021년의 성소수자가 겪는 이런 의료 현실은 불과 200년 전 여성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19세기 초엽까지 '돌팔이' 취급을 받았던 여성의학이 50년이 채 걸리지 않는 기간 엄청난 속도로 발전한 배경엔 노예제도가 있었습니다. 미 의학계는 '고장 난 출산기계'를 수리한다는 명분으로 흑인 노예를 의료용 실험체로 동원했습니다. 마취 없이 수술했고, 누군가는 죽기도 했습니다. 이를 수행한 저명한 의사가 '미국 여성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동안에, 많은 흑인 여성은 마치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잊혔습니다.


구태여 200년 전 '의학계 흑역사'를 소환한 까닭은, 소수자와 약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첫 회라는 상징성 때문에, 어떤 이야기로 우리의 시작을 알릴지 고민이 참 많았습니다. 이 뉴스레터를 받아보시는 이창수님과는 이런 예민한 감각을 공유하고 싶어 이 주제를 골랐습니다. '다른 소수자가 스스로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사회에서, 나 또한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


우리가 연대하고 고쳐야 할 게 참 수두룩하죠. 가부장제에서 지속되는 억압과 불평등부터 약자와 소수자의 존재를 지우는 온갖 부당한 권력과 구조까지. 여성, 유색인종, LGBT, 그 누구든 존재 자체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위해서, 함께 읽고 연대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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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by. 이혜미, 양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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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이혜미 잘봤슴니당~~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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